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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삐 애미의 역사 공부/국사공부

고종황제의 대한제국 선포, 삼국간섭, 을미사변, 아관파천

by 하삐 애미 2020. 9. 2.

  맥아더 이전 일본은 청나라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조선 침략을 본격화하고, 1894년 일본이 인천을 상륙한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 역시 만주로 진출하려고 했기에 일본의 진출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결국 일본은 청일 전쟁을 일으켰고, 이를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는 프랑스, 독일과 함께 한반도로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이 것이 이른바 삼국간섭이다.

 일본은 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였고, 1895년 친러 성향의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게 된다. 이렇게 자신의 궁궐마저 일본에게 난도질을 당하자 주권뿐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협을 느낀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정동, 구러시아 대사관)으로 몸을 피하는데 이것이 1896년 2월 아관파천이다.

 결국 러시아의 힘을 등에 업은 고종은 한반도에서의 일본의 세력이 약해 진 틈을 타서 친일관료 체포령 등 시국을 안정시키고 일본의 간섭을 벗어나기 위한 채비를 시작한다. 그러나 1896년 그해 러시아 니콜라이  2세 황제 대관식을 기점으로 러시아는 일본과 손을 잡게 되는데,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우위를 인정하는 대신 일본군의 한반도 주둔을 인정하는 로마노프-야마가타 협정을 맺게 되고,  이 시점을 계기로 러시아도 역시 그 야욕을 들어내는데,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의 머무는 것을 명목으로 광산 채굴권 등 각종 이권을 요구하고, 미국 등 다른 국가에 이런 이권을 넘기는 등 수탈을 시작한다. 대한제국은 사면초가에 빠지게 된다.

  이에 고종은 1896년 4월 독립신문 창간을 전 액 지원하는 등 자주독립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독립의지를 전국적으로 표방하고, 1896년 7월 고종의 후원으로 독립협회도 세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일환으로 러시아 공사관을 벗어나 덕수궁으로 환궁하여 국민들을 안정시키고, 새로운 시대와 자주독립의지를 천명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상소가 올라오고, 고종이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1897년 고종은 제천의식을 올리던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중국의 굴레를 벗어나 진정한 자주독립국이 되었음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자신은 스스로를 황제로 즉위를 하게 된다. 일본의 수탈뿐 아니라 약소국으로서 현재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명분을 만드는 첫 번째 단계였고, 고종에게 있어선 유일한 돌파구였다. 그의 이런 의도를 알기에 각국 열강 러시아, 미국, 독일 등은 황제 알현식 참석 관련한 대책회의를 열 정도로 비협조적이었다.

고종 황제

 황제 즉위식이 있던 당시 사대주의 상징이었던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우며 명실 상부 자주 독립국으로서의 대한제국 시대가 시작된다.

고종이 황제 즉위한 환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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