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계 최 강대국인 미국의 경제 중심지 뉴욕이 사실은 네덜란드의 땅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뉴욕이 과거 네덜란드의 땅이었고, 이름도 뉴암스테르담이었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가치를 판단할 수 없는 이 땅을 네덜란드가 어떻게 정복하게 됐는지, 초창기 뉴욕과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자
17세기 무렵 네덜란드가 막강한 상업력, 해상 장악을 바탕으로 패권을 쥐고 있었고, 영국, 프랑스, 스페인과 아메리카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영국인 핸리 허드슨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고용되어 중국으로 가는 항로를 찾는 미션을 전달 받고, 항해를 시작하고 대서양 탐험을 시작하다가 현재 뉴욕의 심장인 허드슨 강에 1609년 도착하게 되고, 이 때 허드슨 강 이름이 붙게 된다. 그리고 이 곳에서 비버 가죽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수요가 높은 상품을 발견함으로써 네덜란드의 신대륙 탐험에 박차를 가하게 해 준다.
네덜란드는 이후 4차례 추가로 탐사를 한 네덜란드는 서인도 회사를 만들고 허드슨 강 주변에 마을을 만들기 위해 1624년 부터 25년까지 본격적으로 이주를 하기 시작하고 이듬해 1626년 포트 암스테르담을 건설한다. 그리고 원주민에게 헐값에 맨허튼 섬을 사들이고, 그곳을 뉴 암스테르담이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네덜란드에 있는 본국 사람들을 신대륙으로 끌여들이기 위해 신대륙의 건물을 자신들의 양식으로 화려하게 건설해 놓고, 풍요로운 도시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네덜란드 풍의 화려한 건축은 신대륙의 원주민, 해적, 영국인들의 이목을 끌어 약탈을 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방책으로 이에 대해 방벽을 설치 했는데 이 것이 Wall Street 의 시초이다.
네덜란드 공화국은 당시 연방제였는데, 연방제이긴 하지만 일본 전국 시대 처럼 응집력이 강한 국가는 아니었다. 패권 국가로 자리 잡았지만 각 연방이 자신들의 이익만 좇았고, 결국 영국이 패권국가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그 세력이 작아지다 1차 영란전쟁을 기점 그 추가 넘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1664년 영국의 왕 찰스 2세는 자신의 동생 요크 공작에게 뉴암스테르담을 포함한 땅을 하사하게 되고, 요크 공작은 뉴 암스테르담에 무혈입성한다. 그리고 이 땅을 요크 공작의 이름을 따 뉴욕이라고 명하게 된다. 그리고 1년 후 1665년 네덜란드에 선전포고를 하고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만 패배하게 된다. 1차 영란전쟁의 패배를 거울 삼아 네덜란드가 해군력을 강화했고, 동맹국 프랑스의 참전으로 영국이 밀린 것이다.
1665년 흑사병, 런던 대화재 등 영국은 전쟁 불가능 상태가 됐고, 네덜란드와 타협을 하는데 뉴욕의 지배를 인정 받는 대신 네덜란드에 향신료와 무역의 중심지였던 반다 제도의 런 섬을 넘겨주게 된다.
'하삐 애미의 역사 공부 > 세계사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의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의 배경과 전개, 한반도처럼 남과 북이 분단됐던 미국 (0) | 2020.12.17 |
---|---|
아편전쟁의 배경과 의의, 중국 몰락의 시작 -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가 되고 서구열강의 동아시아 침탈의 신호탄이 된 전쟁 (0) | 2020.11.08 |
흑사병 - 중세시대에 코로나바이러스 COVID 19, 에볼라보다 더 무서웠던 전염병 (0) | 2020.11.03 |
EU 의 탄생 - 2차 세계 대전 이후 피폐해진 서유럽국가가 유럽연합을 만들기까지 EC, ECSC, EURATOM, EEC (0) | 2020.09.26 |
제2차 세계 대전의 원인 (0) | 2020.09.01 |
댓글